오늘은 양심고백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다. 2018년도, 당시 셀린느의 수장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나고 생로랑의 에디슬리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했을 때, 전세계 셀린느의 여성팬들이 들고 일어섰고, 그 중 하나가 나였다. 그 시절의 셀린느를 ‘올드셀린느’라 부르며, 수집하는 매니아 층이 아직까지도 있을 정도니, 당시 피비 파일로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그녀의 셀린느는 특유의 프렌치 감성과 심플하고 실용적이지만 여성스럽고 우아한 디자인으로 사랑받았고, 심플한 룩으로 럼웨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곤 했던 그녀 자체가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였다. 그런 그녀가 셀린느를 떠나는 것도 모자라, 에디 슬리먼이라니? 생로랑의 락시크 무드가 멋진 건 알지만, 셀린느의 편안함, 심플함, 세련됨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감성이었다.
‘셀린느’ 다웠던 것과 새로움 사이의 간극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 해 처음 공개된 셀린느 컬렉션 라인에서는 그가 과거 생로랑에서 선보였던 스타일과 비슷한 착장이 너무 많았다. 많은 패션지에서 대놓고 에디슬리먼의 셀린느와 생로랑을 비교하며 조롱했다. 명품 브랜드 간의 유사성을 고발하는 ‘다이어트 프라다’ 에서는 에디슬리먼이 셀린느에서 생로랑 시절을 자기 컬렉션을 복제 했다고 폭로하는 웃픈(?) 헤프닝이 벌어졌다.
여담이지만, 당시 패션계는 완전히 생로랑 처럼 되버린 셀린느를 보고, 기존의 셀린느 고객들은 어디로 갈것인가가 초유의 관심사였다. 비슷한 무드의 브랜드였던 ‘로에베’ 나 ‘Ports1961’ 등 몇몇 브랜드가 박터지게 싸운 결과..
빈집털이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르메르’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다. 내려다보는 자태 보소..
사실 누구보다 피비파일로의 셀린느를 추종하던 나조차도 미니멀한 스타일의 포지션으로는 그 무엇보다 질샌더를 좋아하지만, 정작 내 옷장에도 나름(?) 리즈너블한 가격대의 르메르 제품이 훨씬 많다. 나를 비롯해 당시 피비의 셀린느를 추종하던 세력은 ‘올드셀린느’ 수집에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다른 브랜드로 유목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에디 슬리먼의 완전히 새로운 ‘셀린느’ 왕국
하지만 몇 시즌이 지난 지금 어떠한가? 셀린느는 남성컬렉션, 향수 라인까지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M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 아래에 상업적으로 그 어떤 시대보다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디올, 생로랑 그리고 여성복 브랜드였던 셀린느 까지 연달아 성공시킨 에디 슬리먼은 명품하우스들이 가장 모시고 싶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임을 입증한 셈이다.
에디슬리먼의 셀린느는 오리지널 로고와 패턴을 가져다 재해석해 ‘트리오페’ 라인을 만들고, 본인의 아이덴티티인 락시크 무드에 레트로 감성을 한방울 더해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피비의 셀린느는 니트와 슬랙스 차림에 편안한듯 멋스러운 워킹 우먼이 떠올랐다면, 에디의 셀린느에서는 청바지와 가죽자켓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힙한 20대 친구들이 떠오른다. (리사야, 볼캡이 빠졌잖아.)
이 언니 오빠 만남 주선해야할 거 같아. 간지 터진다.
셀린느의 컬렉션 착장을 참고해 블루진에 레더자켓. 볼캡을 눌러쓰고 힙한 곳을 찾아다녀보자. 셀린느의 컬렉션은 MZ 세대가 추종하는 스타일 그 자체다. 에디는 ‘팔리는’ 포인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CELINE Bag Collection, 올드 셀린느와 뉴 셀린느 트리오페 라인
피비가 어떠한 패턴이나 로고플레이 없이 컬러 조합,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피비만의 무드를 만들어 갔다면, 에디슬리먼은 과거 초창기 패턴과 로고를 부활시켜 ‘트리오페’ 라인을 세련되게 재해석한다. 둘 중 무엇이 더 멋지냐고?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개취의 영역일 뿐.
피비의 셀린느 백들은 색조합(컬러블록)와 스티치, 골드톤의 빈티지한 금속 포인트를 자주 활용했다. 지금봐도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에 골드 컬러로 적힌 로고는 ‘올드 셀린느’의 정체성을 모두 담고 있다. 그야말로 심플앤럭셔리 그 자체이다.
반면, 에디슬리먼의 셀린느에서는 오래전 셀린느의 트리오페 패턴을 부활시켰고, 초창기 셀린느의 로고를 적극 활용한다. 블링한 체인 장식도 눈에 띄며, 캐주얼한 캔버스 소재도 자주 쓰인다.
런웨이에 오르는 근사한 의상들보다 언제나 우리에게 익숙한 건 되려, 가방이다. 나는 셀린느의 ‘클래식 박스’ 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10년은 더 거뜬하지 않을까. 어떤 제품은 생각보다 잘쓰지 않아서 충동구매를 반성하기도 하는데 어떤 제품은 생각보다 오래오래 아껴쓰게 된다. 나에겐 이게 그런 제품이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과거 많은 제품이 단종되었어도 여전히 굳건하게 매장 한켠을 지키고 있는 ‘클래식박스’. 그리고 비슷한 쉐입의 새로운 베스트셀러 ‘셀린느 트리오페’
모든 것은 끊임 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진다. 피비 파일로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고, 에디 슬리먼은 어느덧 셀린느에 몸담은지도 벌써 햇수로 5년차이다. 이제 셀린느에 새로운 수장이 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이니, 우리는 어쩌면 한가지 스타일의 셀린느를 고집하기 보다, 계속해서 변화할 셀린느에 대해 관심과 애정 그리고 격려는 보내는 것이 맞겠다. 많은 여성들이 사랑하는 브랜드 셀린느의 미래를 더 궁금해해보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를 깜짝 놀래킬 수 있으니.
사랑하는 스타일, 애착이 가는 브랜드, 아껴 사용하는 나만의 물건을 가진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치얼스.